삼성, 소치 동계 올림픽 광고는 하나도 안 사...

미디어&마케팅/마케팅 2014. 2. 26. 09:59

삼성전자는 북미시장에서 올림픽 기간동안 자신들이 만든 올림픽 광고 소재를 올림픽 중계에 틀지 않았다. 삼성은 올림픽 공식 파트너사임에도 불구하고 NBC의 올림픽 광고를 구매하지 않는 전략을 채택했다고... (애드에이지 해당 기사 링크) 대신, 삼성은 ABC, CBS, Fox, TNT, ESPN, CNN 등 올림픽 중계를 하지 않는 채널들의 광고를 구매하고, 심지어는 NBC의 비 올림픽 프로그램들의 광고시간을 구매했다고 한다.


이는 삼성전자 같은 최대 스폰서가 실시간 중계 앞뒤로 붙는 TV광고를 도배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신호일까. 애드에이지는 TV뿐 아니라, NBCOlympics.com과 같은 온라인 매체와 자사 케이블 채널 및 NBC 지상파의 아침방송, 심야방송 등에서 올림픽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보다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점차 많은 광고주들이 올림픽 '방송(broadcast)'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올림픽 內에만 광고한다는 게 오히려 옳지 않는 것 아닌가."

 - Team Epic이라는 스포츠마케팅 광고회사의 공동창업자인 Mike Reisman 曰



[Samsung GALAXY Note 3 Sochi 2014 동계올림픽 광고, "Home Olympics" 편]


실제 삼성이 이번에 제작한 광고 "Home Olympics"편은, 이번 2월 12일부터 온에어되어 지난주말에 내렸는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TV광고(iSpot's list of the most-talked about TV spots of the week) 4위를 기록했다. 올림픽을 주제로 한 광고 중에서는 P&G의 "Thank You, Mom."만이 3위를 기록하며 유일하게 삼성을 앞섰는데, 이는 TV광고에서 더 많은 금액을 쏟아부은 Geico, Five Hour Energy, Chrysler 등보다 높은 수치라고 한다.


삼성은 공식적으로 미디어 바잉 전략을 논하진는 않았지만, 올림픽 광고의 문제는 동일한 시청자에게 반복노출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이라는 추측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삼성이 벤쿠버에 비해 소치 때에는 광고비를 줄인 것 아니냐는 것인데, 벤쿠버 때에는 $18.6 million을 썼는데 아직 집계 전이지만 소치는 이보다 더 적을 것이라는 업계 추측이다. (☞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령, 벤쿠버 때는 시차가 없는 반면 소치 올림픽 때는 시차가 북미 기준으로 9시간 차이가 난다, 또 신제품 출시시기라든지 단순비교만으로는 설명불가한 요소가 너무 많다.)


이 기사가 눈길을 끌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번 동계올림픽 중계로 국내 방송사들은 적자만 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광고주들이 북미시장처럼 파격적인 시도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확실히 올림픽 콘텐츠에만 국한하여 광고를 집행하는 원칙은 국내에서도 보다 느슨해 질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를 보여주는 매체 사이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바로 포털사이트 '다음'의 전략이다. 


다음은 이번 동계올림픽의 중계 영상을 구매하지 않았고, 단순 기사와 네트즌 중계만으로 자사의 사이트를 구성했는데도 트래픽이 크게 줄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광고를 올림픽 콘텐츠에 틀지 않는 것이랑 동영상 콘텐츠를 수급하지 않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둘다 공통적인 건 '올림픽 = TV방송'이라는 공식을 깬다는 것에 있다. 


중계권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황에서 자꾸만 TV방송이 아닌 곳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이 상황이 향후 올림픽, 월드컵 등의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어마어마한 중계권료와 광고비를 둘러싸고 각 진영의 머리싸움과 힘겨루기가 상당할 것이란 것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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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포스팅 없는 여행기 -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실리콘밸리 등)

여행 이야기 2013. 10. 25. 08:09
  • 제가 읽었습니다. 맛집에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상당히 흥미롭게.

    이옥규 2013.10.30 21:19

언제부터인가 여행정보를 얻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뒤져 블로그들을 찾게 되면, 대부분이 맛집 정보가 나온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나는 좀 다른 정보를 제공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미식가가 아니고,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열심이 없다는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먹방'이란 게 유행을 했는데 남이 먹는 걸 보면서 만족을 느낀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이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걸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는 게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오랜 다이어트에 시달려 남이 먹는 거라도 봐야겠다는 걸까. 아니면, 이제는 음식 따위는 귀한 게 아니라서 그걸 저렇게 맛있게 먹는다는 게 흥미롭게 다가온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먹방이라는 것이 가져온 신드롬은 한국 사회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저 추측만 해본다.


미국을 와서 약 열흘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정처도 없이 떠돌이처럼. 물론 중간 중간 일정을 잡고, 미팅도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참 여유로워서 좋았다. 샌프란시스코를 걸어서 구석구석 돌았다. 위험하다는 시빅센터는 나중에 갔지만, 첫날 짐을 풀자마자 유니온스퀘어에서 피서맨스워프까지 걷고, 다시 거기서 베이브릿지가 있는 곳까지 또 걷고. 간만에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니 묵은 스트레스가 날라가는 것 같았다. 그래, 인생은 원래 이렇게 나그네처럼 살아야 하는데... 가끔씩 되곤 하는 '여행객'이라는 신분이 참 좋다. 여행객에게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도 나에게는 '아, 현지인은 이렇게 살아가는 구나..'하고 추측하게 하는 단서가 되고, 제 아무리 허술한 음식점이라도 계산을 하는 방법부터 (가령, 팁을 줘야 한다든지) 음식이 나오는데까지 걸리는 시간,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식체계에 새로운 정보로 들어오게 되고, 나는 열심히 그것을 분석한다.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의 모든 감각기관이 열리고 내 과거의 경험들이 분주히 꺼내어 지고 비교/분석되는 과정이 즐겁다. 

저 웨이트레스가 갑자기 나한테 음식이 맛있냐고 묻는다. 상냥해서인가? 아니, 팁을 위해서다. 그 질문 외에서 느껴지는 모든 행동과 태도는 상당히 불쾌할 정도다. 그러나 룰은 룰. 팁을 합쳐 계산을 한다. 물론 가장 짜게.

세상 사는 이치는 참 언제가 한결 같다. 친절함과 부드러움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일한 태도를 불러오게 한다. 심지어 친절한 점원에게는 영어도 술술 잘 나온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까지 해가며... 그러면 전체적인 쇼핑의 경험이 즐거워진다. 가격표를 더 유심히 쳐다보지 않게 됨은 물론.

이곳에서 운전을 하면서 참 신기한 룰을 발견했다. 요약해 보면 3가지 정도인데. 1. Stop at Stops. 길을 가다보면, 특히 골목길 같은 곳은 신호등이 대부분 없다. 대신 STOP사인이 붙어있는 교차로에서는 항상 멈춰서야 한다. 그리고 먼저 온 순서대로 갈 길을 간다. 생각해보면 이 시스템은 참으로 효율적이다. 일단, 신호등이 필요 없다. 돈이 덜 든다. 사회로 보면 동일한 예산을 다른 곳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참여자들의 100% 참여가 필요하다. 만약, 한 명이라도 이 룰을 어기게 되면 교차로에서의 교통사고로 이어지고,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은 증가할 것이다. 2. People First. 유럽도 마찬가지이지만, 보행자들이 눈치를 보지 않는다. 내가 건넌다는데... 감히 어디 차 따위가... 이런 마인드는 사실 운전자 (생각해보면 그들도 보행자라는 지위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들이 항상 양보하게 되는 사회적 합의를 가져온 듯하다. 이건 효율이나 시스템보다는 그저 철학적 차이인것 같다. 혹은 자동차 문화가 자리잡은 기간이 길어서일 수도 있겠다. 비교적 자동차 문화가 최신인 곳에서는 간혹 사람들이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반대편 인도에서부터 찻길을 건너려는 보행자를 발견했다고 그 사람을 위해 멈춰선다면, 아마 뒤에서 클락슨이 울릴 확률은 99%. 마지막으로 3. 운전을 진짜 못한다. 아무때나 막 끼어든다. 고속도로에서 말그대로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데 끼어드는 차량을 만나 놀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이건 근데 아직 모르겠다, 내가 운전을 못하는 건지... 아무튼 이들의 끼어들기 실력은 한국의 택시기사 저리가라이다.


어쨌든, 차를 타고 이곳 저곳 돌아다녀보니 참 동네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근데 그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건, 그곳에 사는 인종이 다르다는 의미랑도 상통한다. 좋아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유색인종, 특히 여긴 캘리포니아인만큼 히스패닉을 많이 보게 되고,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좋아보이는 (혹은 내 머릿속의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동일한) 곳에는 어김없이 백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는 노숙자들이 정말 많은데, 대부분은 흑인이지만 백인, 아시아인 등의 노숙자들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주류사회가 노숙자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과거 자기들이 잘 살려고 부려먹던 노예가 이제는 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노숙자가 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모든 일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답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미국 사회가 그것도 현재의 주류사회가 그런 시각을 갖고 있을지는 현재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실리콘밸리. 사실 난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의 구로디지털단지 같은 곳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작은 회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실리콘밸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의 Bay Area 라고 불리우는 이 말발굽같이 생긴 지역 모두를 포괄적으로 실리콘밸리라고 부르더라. 물론, 실리콘 밸리 길이 따로 있지만. 근데 확실한 건 이 지역 특유의 공기(Atmoshere)가 있다. 이곳 특유의 날씨나 음식 같은 외생변수가 한몫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좋은 날씨, 음식을 찾아 미국 전역 혹은 세계 곳곳에서 좋은 인재들이 몰려들게 되는데, 물어보면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꽤 된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사계절 조깅하기 좋고, 놀러다니기 좋고, 야외 테라스에 앉아 노트북 갖고 놀기 좋다는 뜻이 아닐런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열정적이고 활발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딱 봐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런 Entreprenuer 류의 사람들이 모인 게 아닐까. 거기에 미국 최고의 학교인 스탠포드와 UC Berkeley, UCLA 같은 곳에서는 계속해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가끔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기세인 정치인/관료들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들이 벤치마킹하는 곳이 실리콘밸리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흠... 문화, 날씨, 음식 등이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팔로워가 될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제주도를 실리콘밸리처럼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건 그나마 한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 제주도이기 때문이다. 그럼 제주도를 단지 기업하기 좋은 곳이 아니라 정말 살기 좋은 곳 - 한국에서 윈드서핑도 할 수 있고, 윗통 벗고 조깅할 수 있고, 사시사철 맛있는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포지셔닝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뭔가 좀 더 도전적인 일을 위해 모이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별장 하나씩 멋있게 지어서 쉬면서 자신들의 돈을 투자할 곳을 찾을 수 있는 곳. 지구온난화가 조금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이렇게 재미 없는 블로그를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진도 없고, 맛집 포스트도 없는데...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느낀 점을 소개하면, 미국은 철저히 텍스트 위주의 문화다. 우리는 그에 반해 사진, 표 등의 시각화를 상당히 좋아한다. 둘다 장단이 있고, 그래서 미국도 인포그래픽이라는 게 유행하고 있지만, 결국 가장 간결하게 그리고 오해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추상적인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 텍스트다. 길거리 주차안내부터 관광안내책자까지.. 여기서는 정보를 알리는 빼곡히 적혀있는 글을 보는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 포스팅도 인기는 없겠지만, 미국에 관한 가장 미국적인 포스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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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을 버려야 방송사가 산다

미디어&마케팅/MBC 2013. 5. 19. 23:26
  • 좋은 글, 너무 잘 봤습니다! 방송일을 꿈꾸는 학생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으니 지식층이 한 껍질 깨이는 소리가 들리네요!! 감사합니다^^

    최원영 2013.09.02 23:30
    • 네 감사합니다.

      jwvirus@gmail.com 2013.10.13 11:16 DEL

방송사의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있는 숫자가 있다. 바로 '시청률'이다. 시청률은 사실 방송사의 유일한 성과지표다. 제작도 경영도 모두 시청률을 바탕으로 평가되며, 광고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네티즌들조차 시청률이 몇%가 나왔는지를 꽤나 궁금해 한다. (검색창에 드라마 제목을 치면 연관검색어 1~2순위를 다투는 게 바로 '000 시청률'이다.)


문제는 이 시청률이 더이상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시청률이 담지 않고 있는 시청행태에 있다. 현재 닐슨이나 TNmS의 집계방식은 TV(직접수신, 케이블, IPTV, 위성)를 통해 '실시간'으로 TV를 보는 사람만 집계하고 있다. 최근에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다시보기'가 빠져있다.

둘째는 시청률이 담지 않고 있는 시청수단에 있다. 현재의 시청률은 pooq, tving, sk btv mobile 등의 시청은 실시간이든 다시보기든 포함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 사이에 있는 아프리카tv, 곰tv 등 대체 시청수단 역시 빠져있다. 또한 완전 불법서비스들 역시 당연히 제외되어 있다. 여기에 식당, 엘리베이터, 기타 공공장소 등에서의 시청도 여러 문제로 측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청행태, 시청수단의 변화와 대안을 모두 포괄하여 각 콘텐츠의 총 소비량을 가늠해 보자는 것이 최근 방송사에서 핫한 '통합시청량'의 이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몇 명이) 특정 콘텐츠를 언제, 어떻게 시청하는지를 측정하겠다는 거다. 

(CJE&M은 이미 여기서 더 나아가 콘텐츠로 인한 Buzz량에 행동변화까지 포함하겠다는 야심찬 계획하에 CoB지수를 개발하였지만, 아직 시장 수용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전통적인 시청률이든 새로 개발되는 통합시청량이든, 방송사가 금과옥조로 삼기에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시청률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청률에만 집착하면서 생기는 폐해가 상당한데 그건 통합시청량이 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다음의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1. 시청률은 '시청자'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방송사에게 시청률이란 '경쟁구도'에서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의 지표의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시청자(고객)이 아닌 경쟁사(타 방송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게다가 정작 그 시청자라는 이름 속에 어떤 사람이 포함되는지는 잘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성별, 연령대 정도가 고작이니깐.) 따라서 시청률은 사실 시청자에 대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지 않는다.

반면 소비자 정보를 갖고 있는 기업들에게 고객에 대한 이해란 정말 무시무시한 수준까지 발전해 있다. 가령, 대형마트의 고객에 대해 아마도 그 기업의 마케팅부서는 분석을 이미 마쳤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자주, 무엇을 얼마나 많이 구매하는지 등의 정보를 통해 가족의 수, 결혼여부, 차량소유여부, 대략의 소득수준 추정 등은 물론 그 고객이 임신을 했는지 그리고 언제 했는지까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백화점, 대형마트, 통신사, 카드사, 포털사, 은행, 증권사 등은 그들이 지닌 '빅 데이터'를 통해 지금 소비자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는 오로지 '시청률' 하나에 의존해 험난한 길을 항해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2. 시청률은 진짜 경쟁자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방송사에게 더이상 상대 방송사만이 경쟁사인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시청률은 오직 방송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지표이므로, 진짜 적들이 누구인지 절대 알려주지 못한다. 가령, 왜 이동통신사가, 왜 포털사가, 왜 글로벌 가전사가 방송사의 진짜 경쟁자인지는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몽상 수준의 픽션일테다.

이건 마치 성의 망루에 올라 먼 곳을 보는 보초병에게는 분명 저 멀리에서부터 뿌연 연기가 일고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데, 보초병이 열심히 종을 울리고, '적군이 몰려온다!!!'라고 외쳐보지만 사람들은 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귀가 열려 있어서 보초병의 외침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한 느낌. 성 안에서 제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소리는 듣지 못하는 이상한 마을. 

아마도 그게 시청률이라는 방송계의 유일신이 만들어 놓은 무서운 영적 무지 상태가 아닐까 싶다.

(문제는, 지상파의 경우 인접 산업의 위협은 커녕, 아직 케이블, 종편 등을 경쟁사로 인정하고 제대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청률 보고의 틀 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지상파는 몇 십년이 지나도록 지상파 4사의 시청률을 일일보고 하고 있다. 이 틀을 갖고는 새로운 도전자들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모른 채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아주 잘못된 습관인 셈이다.)


3. 시청률은 미래를 말해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시청률은 오로지 과거 자료라는 점이다. 결국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과거 기업 실적을 쫓다 리먼 사태나 블랙먼데이 등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시청률 자료만 보는 방송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지나간 시점의 자료를 갖고 사고하게 하는 못된 습관이 방송사에 뿌리박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하다. 

방송사처럼 투자에 인색한 곳이 있을까. 아마도 그건 그 누구도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지만 결국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메커니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구조 속에서는 새로운 것이 피어날 수 없다. 왜 방송사가 신선한 신인보다 출연료도 비싸고, 콘트롤도 안되는 유명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인지, 또 왜 그렇게 성공한 작가에 끌려다니는 것인지도 알고보면 실은 시청률 때문이다.


통합시청량은 개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시청률처럼 그 독보적 지위가 당연히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방송사에게 시청률이야 절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지표는 아닐테지만, 반드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사고의 확장과 더 나아가 콘텐츠의 숨 쉴 틈을 위해서라도 좀 더 다양하고 균형잡힌 각 지표(metrics)와 틀거리(framework)가 필요해 보인다. 


현재 방송사는 오로지 시청률이라는 속도판만 바라보고 주행하는 차량과도 같다. 

그러나 속도판만 있는 자동차 계기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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