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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부의 기원(The Origin of Wealth) (1)

by jwvirus 2013. 1. 17.

첫 번째 블로그 북리뷰입니다.


제목은 "부의 기원(The Origin of Wealth)"이고요 작가는 에린 바인하커(Eric D. Beinhocker)입니다.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원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저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 위주로 북리뷰를 작성해 보려고 합니다.


책의 Part II에 나오는 한 흥미로운 실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부루킹즈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조슈아 엡스타인(Joshua Epstein)과 로버트 액스텔(Robert Axtell)은 1995년에 무(無)에서 '경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을 하게 됩니다. 즉,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말이죠.

전통적인 경제학은 사실 소비자, 공급자, 기술, 그리고 시장 등이 이미 주어졌다고(given) 가정하고 모델을 수립하고 이론을 전개합니다. 거시경제학에서는 화폐, 노동시장, 자본시장, 정부, 그리고 중앙은행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죠. 앱스타인과 액스텔은 이런 모든 가정을 과감히 버리고, 원시의 상태(State of Nature)로 돌아가서 모델을 설정합니다. 여기에는 개별 주체들은 매우 기본적인 능력과, 환경, 그리고 자원이라는 조건만 부여합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탄 배가 난파해서 무인도에 갑자기 떨어진 상황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물론 이 상황은 컴퓨터에서 펼쳐지는 가상 시뮬레이션이죠. 이 가상의 섬 위에 50 × 50의 격눈자를 포개 봅니다. 거대한 장기판 같은 거죠. 이 섬에는 오로지 하나의 자원이 있는데, '설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 격눈자 점 위에는 다른 양(최소 0에서 최대 4까지)의 설탕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설탕이라는 자원으로 이뤄진 산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북동쪽 코너에 또 하나는 남서쪽 코너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산은 3~4개의 높이로 설탕들이 쌓여 있는 곳이죠. 그리고 이 두 개의 설탕산 사이에는 설탕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사막과 같은 공간이 존재합니다. 두 연구원들은 이렇게 생긴 가상의 섬을 '설탕나라(Sugarscape)'라고 불렀습니다.


설탕나라의 지형도는 아주 심플하게 현실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반영한 모형입니다. 즉, (1) 물리적 공간의 개념이 존재하므로, 여기서는 동서남북으로 움직일 수 있고 (2) 설탕이라고 하는 에너지원이 있고 (3)지형이 균일하지 않고 비옥하거나 메마른 다양한 환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의 인간들과 유사하게, Agent라고 불리는 개별 주체들에게도 일정한 규칙이 부여됩니다. 최초 실험에서는 Agent는 (1) 먹을 것을 찾고 (2) 움직이고 (3) 설탕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Agent는 시력에 따라 에너지원이 되는 설탕을 찾을 확률이 달라지는데 각 Agent는 섭취한 설탕을 소화하는 데 있어서도 서로 다른 능력치를 갖고 있습니다.

앱스타인과 액스텔은 이렇게 심플한 Agent들이 심플한 지형에 놓여졌을 때 과연 경제라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하는 것을 알아보고자 한 겁니다. 그리고 이런 룰들을 적용했지요.

  • Agent는 각자에게 부여된 시력에 따라 4가지 방향(동서남북)으로 볼 수 있다(대각선은 불가)

  • Agent는 각자의 시야 내에서 차지되지 않은 곳 중에서 가장 많은 설탕이 있는 곳을 골라 낸다

  • Agent는 해당 격눈자 위로 이동해서 설탕을 섭취한다

  • Agent는 섭취한 설탕의 양을 축적하고 소화한 설탕의 양을 차감한다. 만약 소화하는 것보다 많은 설탕을 섭취하면 설탕은 축적되어 저장되고(뱃살이 찌는 것처럼), 반대라면 저장해 둔 설탕을 소비한다(뱃살이 빠짐)

  • 만약 Agent의 저장해 둔 설탕이 0 밑으로 떨어지면 Agent는 굶어 죽는다. 그리고 게임에서 out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랜덤하게 정해진 수명까지 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최초 시점에 각 Agent는 유전자에 의해 능력치가 정해집니다. 즉, 태어날 때부터 '시력'과 '소화능력'을 다르게 타고 나는 겁니다. 따라서 어떤 놈은 한 번에 3칸을 볼 수 있고, 한 라운드마다 2개의 설탕을 소화시키는 반면 어떤 놈은 한 번에 1칸밖에 못 보지만, 설탕은 3개나 필요로 하는 등, 다양한 유전적 조합이 나오는 겁니다. 시력의 최대치는 6칸이고, 최소치는 1칸입니다. 소화능력에 있어서는, 한 라운드를 살아남기 위해 최대 4개의 설탕을 필요로 하는 유전자가 있고 최소 1개만 필요로 하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자는 랜덤하게 부여됩니다. 따라서 이 Agent들은 이질적(heterogeneous)이며, 또한 각자에게 부여된 수명 또한 제각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설탕이 누군가에 의해 섭취되고 나면, 한 라운드에 한 개씩 자동으로 자라납니다.

자, 이제 컴퓨터 시뮬레이션 즉, 게임을 돌립니다!!! 최초에 250개의 Agent들이 랜덤하게 Sugarscape에 흩뿌려집니다. 따라서, 위의 모든 말을 종합하면 아래의 그림처럼 되는 겁니다.



어떤 Agent는 운이 좋아서 설탕산에 떨어집니다. 또 어떤 Agent는 운이 좀 별로라서 사막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요. 결국 사막에 떨어지면 게임 초기에 굶주려서 죽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꽤 빠르게 질서가 잡히고, 지형에 따라 설탕산을 중심으로 Agent들이 모여듭니다. 흥미로운 건 Agent들이 설탕을 엄청 효율적으로 섭취하므로 남아나는 설탕이 매우 적다는 사실입니다. 매우 제한적인 능력만으로도 Agent들은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더라는 겁니다. 


양극화 현상

앱스타인과 액스텔은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면서 몇가지 변수들에 주목합니다. 그 중 하나가 부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설탕 비축량입니다. 특정 시점에 가장 많은 양의 설탕을 비축한 Agent와 가장 적은 양의 설탕을 가진 Agent 사이의 거리를 10의 단위로 잘라서 빈도 표를 만들어 봤습니다. 그러면 이 표는 0~10개의 설탕을 가진 개체의 수, 11~20개의 설탕을 가진 개체의 수... 를 보여주겠죠.

이 히스토그램에서 두 연구원은 "부의 분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는데요. 시뮬레이션 초기에는 설탕나라는 상당히 평등한 나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의 분배가 꽤 균등하게 이러지고, 극소수의 부자 개체, 극소수의 가난한 개체, 그리고 대다수의 중산층 개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가장 부자와 가장 가난한 개체 사이의 '거리' 역시 크지 않고요.


그러나 여기서 시간이 지나면 부의 전체평균은 급격히 상승합니다. 그리고 극소수의 슈퍼리치가 탄생하게 됩니다. 또 상류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Agent 그룹이 설탕비축량 상위단에 넓게 포진하고요, 중산층은 쪼그라들게 되고,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하층민, Poor Agent들이 생겨나더라는 것입니다. (최초 라운드에서는 가장 부자가 30개의 설탕을 갖고 있었는데 반해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270개를 차지한 상태에서 게임이 끝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간극이 그만큼 커진 것입니다.)


이런 결과값을 얻게 된 근거가 된 시뮬레이션의 시계열 모습이 아래와 같고요. (스캔 자료가 다 삐뚫어져서 죄송합니다^^;)




여기서 책의 저자인 바인호커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첫번째 질문해 볼 수 있는 건 이게 Nature의 문제냐? 입니다. 즉, 각 개체들에 부여된 유전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냐인 거죠. 그러면 가장 좋은 시력과 가장 느린 소화능력을 가진 Agent들이 부를 차지했어야 하는데, 실험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답은 No.

두번째 질문해 볼 수 있는 건 이게 Nurture의 문제냐?입니다. 즉, 각 Agent들이 태어난 환경에 따라 부가 결정되었는가의 문제요. 이 역시 No라는 겁니다.

답은 짧게 말하면, '둘 다'라는 겁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분배의 결과는 집합적 미시행위로부터 비롯되는 거시적 행위라고... 즉, 지형의 모습, 유전적 차이, 출생의 장소, 주어진 규칙들, 상호작용과 환경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부의 불균형적 분배를 야기했다는 겁니다.

능력치가 부족해도 운이 좋아서 설탕산에 떨어진 Agent는 아마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능력치가 높게 부여된 채 태어나도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진면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 또 만약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고 비슷한 환경에 떨어진 두 개의 다른 Agent가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이 달라져서 하나는 설탕산으로 향하고 하나는 사막으로 향한다면, 그 결과는 급격히 달라진다는 것. 이 모든 건 사실 기존 경제학에서는 부정하고 있는 주장입니다. 즉, Horizontal Inequality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Randomness가 개체들에게 최초에 다른 길을 가게 하는 이유가 되지만, 그 길이 급격하게 갈라지는 데에는 게임의 Dynamics(유전, 환경, 지형, 선택, 규칙 등의 복합적 메커니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 다이나믹스가 랜덤한 분배를 왜곡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요.

바로 이 다이나믹스를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가령, 철수는 우수한 유전자와 조금 나은 환경에 태어났다고 칩시다. 그러면 다이나믹스에 의해 철수의 성공에 가속도가 붙게 되는 겁니다. 영희는 다소 부족한 유전자와 조금 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영희의 빈곤의 속도 역시 다이나믹스에 의해 가속도가 붙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유전자와 환경에 약간의 다른 선택, 약간의 다른 길이 합쳐져서 각자의 삶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죠. 여기서 작은 차이가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값의 차이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런 차이들은 벌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위의 그래프를 양 끝 쪽을 잡고 반대 방향으로 늘리면 가운데는 줄어들고 양끝이 늘어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시스템에 내재된 다이나믹스의 자연스러운 방향성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극화라는 것이죠.


이 간단한 모형에 의한 시뮬레이션이 말하는 것은 빈곤과 소득불균형의 문제에는 단순한 하나의 이유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한 방향에서만 문제를 바라봐서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 "가난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므로 발생하는 문제다..."라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도,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멍청하거나, 둘 다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라는 식의 우파적 시각도 가난의 진짜 원인의 한 쪽 면만을 보고 있다(틀렸다!와는 다른 말이겠죠?^^')는 것이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해석 속에서 내놓는 반쪽짜리 해결책 역시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첫번째 글을 마치고, 

다음 글에서 이 실험이 갖는 의의와, 이 실험의 다른 버전들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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