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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마케팅/MBC

시청률을 버려야 방송사가 산다

by jwvirus 2013. 5. 19.

방송사의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있는 숫자가 있다. 바로 '시청률'이다. 시청률은 사실 방송사의 유일한 성과지표다. 제작도 경영도 모두 시청률을 바탕으로 평가되며, 광고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네티즌들조차 시청률이 몇%가 나왔는지를 꽤나 궁금해 한다. (검색창에 드라마 제목을 치면 연관검색어 1~2순위를 다투는 게 바로 '000 시청률'이다.)


문제는 이 시청률이 더이상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시청률이 담지 않고 있는 시청행태에 있다. 현재 닐슨이나 TNmS의 집계방식은 TV(직접수신, 케이블, IPTV, 위성)를 통해 '실시간'으로 TV를 보는 사람만 집계하고 있다. 최근에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다시보기'가 빠져있다.

둘째는 시청률이 담지 않고 있는 시청수단에 있다. 현재의 시청률은 pooq, tving, sk btv mobile 등의 시청은 실시간이든 다시보기든 포함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 사이에 있는 아프리카tv, 곰tv 등 대체 시청수단 역시 빠져있다. 또한 완전 불법서비스들 역시 당연히 제외되어 있다. 여기에 식당, 엘리베이터, 기타 공공장소 등에서의 시청도 여러 문제로 측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청행태, 시청수단의 변화와 대안을 모두 포괄하여 각 콘텐츠의 총 소비량을 가늠해 보자는 것이 최근 방송사에서 핫한 '통합시청량'의 이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몇 명이) 특정 콘텐츠를 언제, 어떻게 시청하는지를 측정하겠다는 거다. 

(CJE&M은 이미 여기서 더 나아가 콘텐츠로 인한 Buzz량에 행동변화까지 포함하겠다는 야심찬 계획하에 CoB지수를 개발하였지만, 아직 시장 수용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전통적인 시청률이든 새로 개발되는 통합시청량이든, 방송사가 금과옥조로 삼기에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시청률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청률에만 집착하면서 생기는 폐해가 상당한데 그건 통합시청량이 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다음의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1. 시청률은 '시청자'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방송사에게 시청률이란 '경쟁구도'에서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의 지표의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시청자(고객)이 아닌 경쟁사(타 방송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게다가 정작 그 시청자라는 이름 속에 어떤 사람이 포함되는지는 잘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성별, 연령대 정도가 고작이니깐.) 따라서 시청률은 사실 시청자에 대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지 않는다.

반면 소비자 정보를 갖고 있는 기업들에게 고객에 대한 이해란 정말 무시무시한 수준까지 발전해 있다. 가령, 대형마트의 고객에 대해 아마도 그 기업의 마케팅부서는 분석을 이미 마쳤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자주, 무엇을 얼마나 많이 구매하는지 등의 정보를 통해 가족의 수, 결혼여부, 차량소유여부, 대략의 소득수준 추정 등은 물론 그 고객이 임신을 했는지 그리고 언제 했는지까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백화점, 대형마트, 통신사, 카드사, 포털사, 은행, 증권사 등은 그들이 지닌 '빅 데이터'를 통해 지금 소비자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는 오로지 '시청률' 하나에 의존해 험난한 길을 항해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2. 시청률은 진짜 경쟁자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방송사에게 더이상 상대 방송사만이 경쟁사인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시청률은 오직 방송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지표이므로, 진짜 적들이 누구인지 절대 알려주지 못한다. 가령, 왜 이동통신사가, 왜 포털사가, 왜 글로벌 가전사가 방송사의 진짜 경쟁자인지는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몽상 수준의 픽션일테다.

이건 마치 성의 망루에 올라 먼 곳을 보는 보초병에게는 분명 저 멀리에서부터 뿌연 연기가 일고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데, 보초병이 열심히 종을 울리고, '적군이 몰려온다!!!'라고 외쳐보지만 사람들은 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귀가 열려 있어서 보초병의 외침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한 느낌. 성 안에서 제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소리는 듣지 못하는 이상한 마을. 

아마도 그게 시청률이라는 방송계의 유일신이 만들어 놓은 무서운 영적 무지 상태가 아닐까 싶다.

(문제는, 지상파의 경우 인접 산업의 위협은 커녕, 아직 케이블, 종편 등을 경쟁사로 인정하고 제대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청률 보고의 틀 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지상파는 몇 십년이 지나도록 지상파 4사의 시청률을 일일보고 하고 있다. 이 틀을 갖고는 새로운 도전자들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모른 채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아주 잘못된 습관인 셈이다.)


3. 시청률은 미래를 말해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시청률은 오로지 과거 자료라는 점이다. 결국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과거 기업 실적을 쫓다 리먼 사태나 블랙먼데이 등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시청률 자료만 보는 방송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지나간 시점의 자료를 갖고 사고하게 하는 못된 습관이 방송사에 뿌리박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하다. 

방송사처럼 투자에 인색한 곳이 있을까. 아마도 그건 그 누구도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지만 결국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메커니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구조 속에서는 새로운 것이 피어날 수 없다. 왜 방송사가 신선한 신인보다 출연료도 비싸고, 콘트롤도 안되는 유명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인지, 또 왜 그렇게 성공한 작가에 끌려다니는 것인지도 알고보면 실은 시청률 때문이다.


통합시청량은 개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시청률처럼 그 독보적 지위가 당연히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방송사에게 시청률이야 절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지표는 아닐테지만, 반드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사고의 확장과 더 나아가 콘텐츠의 숨 쉴 틈을 위해서라도 좀 더 다양하고 균형잡힌 각 지표(metrics)와 틀거리(framework)가 필요해 보인다. 


현재 방송사는 오로지 시청률이라는 속도판만 바라보고 주행하는 차량과도 같다. 

그러나 속도판만 있는 자동차 계기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