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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맛집 포스팅 없는 여행기 -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실리콘밸리 등)

by jwvirus 2013. 10. 25.

언제부터인가 여행정보를 얻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뒤져 블로그들을 찾게 되면, 대부분이 맛집 정보가 나온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나는 좀 다른 정보를 제공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미식가가 아니고,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열심이 없다는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먹방'이란 게 유행을 했는데 남이 먹는 걸 보면서 만족을 느낀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이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걸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는 게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오랜 다이어트에 시달려 남이 먹는 거라도 봐야겠다는 걸까. 아니면, 이제는 음식 따위는 귀한 게 아니라서 그걸 저렇게 맛있게 먹는다는 게 흥미롭게 다가온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먹방이라는 것이 가져온 신드롬은 한국 사회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저 추측만 해본다.


미국을 와서 약 열흘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정처도 없이 떠돌이처럼. 물론 중간 중간 일정을 잡고, 미팅도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참 여유로워서 좋았다. 샌프란시스코를 걸어서 구석구석 돌았다. 위험하다는 시빅센터는 나중에 갔지만, 첫날 짐을 풀자마자 유니온스퀘어에서 피서맨스워프까지 걷고, 다시 거기서 베이브릿지가 있는 곳까지 또 걷고. 간만에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니 묵은 스트레스가 날라가는 것 같았다. 그래, 인생은 원래 이렇게 나그네처럼 살아야 하는데... 가끔씩 되곤 하는 '여행객'이라는 신분이 참 좋다. 여행객에게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도 나에게는 '아, 현지인은 이렇게 살아가는 구나..'하고 추측하게 하는 단서가 되고, 제 아무리 허술한 음식점이라도 계산을 하는 방법부터 (가령, 팁을 줘야 한다든지) 음식이 나오는데까지 걸리는 시간,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식체계에 새로운 정보로 들어오게 되고, 나는 열심히 그것을 분석한다.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의 모든 감각기관이 열리고 내 과거의 경험들이 분주히 꺼내어 지고 비교/분석되는 과정이 즐겁다. 

저 웨이트레스가 갑자기 나한테 음식이 맛있냐고 묻는다. 상냥해서인가? 아니, 팁을 위해서다. 그 질문 외에서 느껴지는 모든 행동과 태도는 상당히 불쾌할 정도다. 그러나 룰은 룰. 팁을 합쳐 계산을 한다. 물론 가장 짜게.

세상 사는 이치는 참 언제가 한결 같다. 친절함과 부드러움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일한 태도를 불러오게 한다. 심지어 친절한 점원에게는 영어도 술술 잘 나온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까지 해가며... 그러면 전체적인 쇼핑의 경험이 즐거워진다. 가격표를 더 유심히 쳐다보지 않게 됨은 물론.

이곳에서 운전을 하면서 참 신기한 룰을 발견했다. 요약해 보면 3가지 정도인데. 1. Stop at Stops. 길을 가다보면, 특히 골목길 같은 곳은 신호등이 대부분 없다. 대신 STOP사인이 붙어있는 교차로에서는 항상 멈춰서야 한다. 그리고 먼저 온 순서대로 갈 길을 간다. 생각해보면 이 시스템은 참으로 효율적이다. 일단, 신호등이 필요 없다. 돈이 덜 든다. 사회로 보면 동일한 예산을 다른 곳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참여자들의 100% 참여가 필요하다. 만약, 한 명이라도 이 룰을 어기게 되면 교차로에서의 교통사고로 이어지고,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은 증가할 것이다. 2. People First. 유럽도 마찬가지이지만, 보행자들이 눈치를 보지 않는다. 내가 건넌다는데... 감히 어디 차 따위가... 이런 마인드는 사실 운전자 (생각해보면 그들도 보행자라는 지위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들이 항상 양보하게 되는 사회적 합의를 가져온 듯하다. 이건 효율이나 시스템보다는 그저 철학적 차이인것 같다. 혹은 자동차 문화가 자리잡은 기간이 길어서일 수도 있겠다. 비교적 자동차 문화가 최신인 곳에서는 간혹 사람들이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반대편 인도에서부터 찻길을 건너려는 보행자를 발견했다고 그 사람을 위해 멈춰선다면, 아마 뒤에서 클락슨이 울릴 확률은 99%. 마지막으로 3. 운전을 진짜 못한다. 아무때나 막 끼어든다. 고속도로에서 말그대로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데 끼어드는 차량을 만나 놀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이건 근데 아직 모르겠다, 내가 운전을 못하는 건지... 아무튼 이들의 끼어들기 실력은 한국의 택시기사 저리가라이다.


어쨌든, 차를 타고 이곳 저곳 돌아다녀보니 참 동네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근데 그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건, 그곳에 사는 인종이 다르다는 의미랑도 상통한다. 좋아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유색인종, 특히 여긴 캘리포니아인만큼 히스패닉을 많이 보게 되고,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좋아보이는 (혹은 내 머릿속의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동일한) 곳에는 어김없이 백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는 노숙자들이 정말 많은데, 대부분은 흑인이지만 백인, 아시아인 등의 노숙자들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주류사회가 노숙자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과거 자기들이 잘 살려고 부려먹던 노예가 이제는 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노숙자가 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모든 일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답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미국 사회가 그것도 현재의 주류사회가 그런 시각을 갖고 있을지는 현재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실리콘밸리. 사실 난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의 구로디지털단지 같은 곳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작은 회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실리콘밸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의 Bay Area 라고 불리우는 이 말발굽같이 생긴 지역 모두를 포괄적으로 실리콘밸리라고 부르더라. 물론, 실리콘 밸리 길이 따로 있지만. 근데 확실한 건 이 지역 특유의 공기(Atmoshere)가 있다. 이곳 특유의 날씨나 음식 같은 외생변수가 한몫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좋은 날씨, 음식을 찾아 미국 전역 혹은 세계 곳곳에서 좋은 인재들이 몰려들게 되는데, 물어보면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꽤 된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사계절 조깅하기 좋고, 놀러다니기 좋고, 야외 테라스에 앉아 노트북 갖고 놀기 좋다는 뜻이 아닐런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열정적이고 활발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딱 봐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런 Entreprenuer 류의 사람들이 모인 게 아닐까. 거기에 미국 최고의 학교인 스탠포드와 UC Berkeley, UCLA 같은 곳에서는 계속해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가끔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기세인 정치인/관료들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들이 벤치마킹하는 곳이 실리콘밸리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흠... 문화, 날씨, 음식 등이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팔로워가 될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제주도를 실리콘밸리처럼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건 그나마 한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 제주도이기 때문이다. 그럼 제주도를 단지 기업하기 좋은 곳이 아니라 정말 살기 좋은 곳 - 한국에서 윈드서핑도 할 수 있고, 윗통 벗고 조깅할 수 있고, 사시사철 맛있는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포지셔닝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뭔가 좀 더 도전적인 일을 위해 모이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별장 하나씩 멋있게 지어서 쉬면서 자신들의 돈을 투자할 곳을 찾을 수 있는 곳. 지구온난화가 조금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이렇게 재미 없는 블로그를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진도 없고, 맛집 포스트도 없는데...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느낀 점을 소개하면, 미국은 철저히 텍스트 위주의 문화다. 우리는 그에 반해 사진, 표 등의 시각화를 상당히 좋아한다. 둘다 장단이 있고, 그래서 미국도 인포그래픽이라는 게 유행하고 있지만, 결국 가장 간결하게 그리고 오해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추상적인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 텍스트다. 길거리 주차안내부터 관광안내책자까지.. 여기서는 정보를 알리는 빼곡히 적혀있는 글을 보는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 포스팅도 인기는 없겠지만, 미국에 관한 가장 미국적인 포스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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