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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반 고흐 미술관에서

by jwvirus 2012. 9. 9.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의 축구팬들이 입는 오렌지 색깔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사나이 반 고흐는

성인이 된 후 첫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곧 신앙심이 그를 사로잡았다. 회사일은 소홀해졌다.

회사는 그를 더이상 고용할 수 없었다.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청년 반 고흐.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첫째로서 갖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거.

가업을 이어야지. 아버지의 삶을 이어살아내야지. 그런 맏이만의 고민들...


그러나.

결국 좌절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한번도 그림을 그려보지 않았고, 잘 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스물여섯의 청년은 또다른 소명으로 불타고 있었다.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자. 기존의 방식이 아닌, 나만의 스타일로. 그리고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자."


그렇게 시작한 늦깎이 화가는 평생 900점의 작품을 남겼고, 1,100점의 스케치, 그리고 700편의 편지를

이 세상에 남기고 갔다. 일종의 흔적이었다. 아니, 흔적이라고 하기에 그것은 너무나도 새로웠으며, 뚜렷하였다. 


반 고흐는 소명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목회를 한다는 심정으로 했을 것이다. 물론 때로는 그저 가난한 화가로 경제적인 걱정으로 고민하기도 했겠지만,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했다. 그의 장점은 그러한 도전이 일종의 '체계성'을 띄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날로 그의 그림들은 성숙해졌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해석'과 '선동'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그의 '과장법'.


<VincentVanGogh-The-Potato-Eaters-1885>


그러나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아닌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도시적인 미적 기준에 의해 반 고흐는 엉터리 화가로 낙인찍어버렸다. 

과장법 특히 그의 비율에 대한 면은 혹평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사람들은 외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그렸다.

브루셀에서 시작된 그의 그림은,

파리에서도, 아를에서도 계속 되었다.


글쎄, 나만의 추측이지만 그런 배경에는 그의 소명의식이 가장 크게 작동했던 게 아닐까.

반 고흐는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스스로를 모델로 그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수많은 그림을 그리면서 반 고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왜,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반 고흐는 대답한다.


나는...


<Self-Portrait in Front of the Easel>

Paris: early 1888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 
화가다. 
그림을 통해 사실을 보여주자. 진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자연 속에서 순간들을 포착해내자. 
그리고 '흔적'을 남기자. 그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재능을 주신 이유다.



그러나 몇 안되는 친구들을 제외하곤, 반 고흐를 알아주지 않았다.
동생 테오마저 없었다면, 그의 정신병은 더 빨리 왔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가 그렇게 집요하게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았더라면,
사실에 대해 탐구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도 행복한 가정과 안락한 죽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을지도 모른다.


정신병을 앓기 직전, 그에게 최고의 순간들이 주어진다.

그때의 작품 속에서는 꽃은 빛을 머금은 존재가 되며,
하늘과 대지는 푸르고 빛난다. 바다의 파도는 기운을 잃지 않는다.

그는 강렬한 대조와 친화적 조화를 오가며 색상을 장악해 버린다.

<Almond Flowers 1890>


<Flowers>


<Sunflowers>


<Wheat Filed with Crows - 1890>


그러나 곧 그의 그림에는 '광기'가 드러난다.

마치 RPM이 너무 높아져서 엔진이 터질듯이 고동치는 그런 상태로 그의 붓은 캔버스 위를 질주한다.


그 미친 기운은 아름다움의 엑스터시가 되었다. 한계는 계속 사라졌다.

더 강렬하게, 더 아름답게, 더, 더, 더...


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한 사내는

스스로의 가슴에 총을 쏘고 이틀 뒤에 숨졌다.


자신의 심장을 겨눈 것은 멈추지 않는 엔진을 꺼보려는 

마지막 생(生)에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소명을 따라 살고자 했던 네덜란드 청년 반 고흐는 중년이 채 되어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그 길이보다 밀도가 더 중요한 법이다.


비록 화가로서는 10여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100년이 넘어서도 그의 흔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흔들림'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사실은 무엇인가'.

그만의 강렬한 색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의 집요한 붓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