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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마케팅/MBC

다시, 가슴 뛰는 MBC를 위해.

by jwvirus 2013. 4. 18.

MBC.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너무나도 큰 이름인 이 조직이 현재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김재철이라는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의 원흉이라는 지적도 큰 틀에선 틀리진 않겠지만, 더욱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김재철은 MBC가 갖고 있던 약점과 단점들을 활용하고, 이미 뿌리내려 있던 부패와 비도덕이 더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해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스스로가 모든 악행에 앞장섰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재철은 나갔지만, MBC와 그 안에 속한 구성원들은 여전히 그가 저질러 놓은 온갖 잘못들을 바로잡기 위해 오늘도 고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몇몇은 이 조직에서 더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가 버렸다. 그 누구도 그들을 원망하지 못한다. 아니, 원망은 커녕 말없이 그들을 위해 눈물 흘려주고 속으로 기도해 줄 뿐이다.


조직이 회복불가능한 지점까지 훼손되어 버려서 사실 자포자기한 이들도 많다. 개인적 여가로 행복이라는 가치를 조금이나마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쓰기고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위해 작은 위로라도 건네며 또 오늘을 달래고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언론사, 최고의 미디어 기업으로 손꼽히던 MBC의 자부심 넘치던 구성원들은 '내일'을 꿈꾸기보다는 '오늘'을 살아내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모든 힘을 다해서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을 위해 일터도, 생업도 포기한 채 MBC의 노동조합워들은 싸우고 또 싸웠다. 하지만, 냉철하게 이야기하자면, 전력을 다했으나 패한 것이다. 9명의 해고와 셀 수 없는 징계와 보복성 인사발령으로 조합원들은 마치 패전국의 설움을 온 몸으로 배워나가듯이 그렇게 또 파업 이후의 괴로운 시기를 겪어야 했다. 역사의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전쟁에서 패배한 쪽의 결과는 처참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역시 하나의 사회적 전쟁이 아니었을까.


나는 2007년도에 MBC에 방송경영직으로 입사를 했다. 단순히 돈만 벌기는 싫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가슴 뛰는 일. 그리고 가치 있는 일.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 이 세가지가 기준이었다. MBC의 합격전화를 받고는 뛸 듯이 기뻤던 것이 생각난다.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직장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방송사에 다니는 사람으로 흔히 기자와 PD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방송사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직종들이 있다. 편성, 기술, 아나운서, CG, 그리고 경영. 이 모든 직군들이 다같이 들어온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다 같은 생각을 한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대기업처럼 다함께 매스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참 신기하다.


그렇게 힘들게 입사한 MBC의 다양한 직군들의 구성원들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과 관점도 키워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위협에 맞서서는 다같이 들고 일어난다. 그게 MBC라는 조직이 여타의 방송사들과 달랐던 점이다. 그리고 그 힘이 결집되어 드러난 것이 바로 지난 이명박 정권에 들어 있었던 다섯 번의 파업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들이 처참히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MBC의 뉴스는 공정성을 잃은지 오래다. 직원들조차 보지 않는 뉴스라면 말 다하지 않았나. 사실, 7~8%의 시청자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에 굵직굵직한 화두를 던지며, 세간을 수차례 발칵 뒤집어 놓았던 MBC의 시사교양국은 이제 그 흔적조차 조직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경영진의 집중적 탄압을 받은 까닭에 시사교양 PD들은 흔히 말하는 ‘자기검열’마저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만이 우리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는 아니다. MBC는 드라마왕국이었다. 이 말은 단지 시청률 대박 프로그램을 많이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드라마 PD들은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그들 역시 드라마라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대한민국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사회적 이슈를 다뤄왔다. 마치, 고대 아네테의 희극 페스티벌이 그 사회와 공동체를 지탱하는 문화적 힘이었던 것처럼, MBC의 드라마는 대한민국 사회를 공동체로 만드는 문화적 영향력이었다.


예능 역시 마찬가지다. MBC의 예능 PD들은 그 어떤 조직보다 단단히 뭉쳐 밤낮없이 자신의 건강과 시간을 희생하며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일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초경쟁사회에서 유일하게 '진짜 웃음'을 주는 조직이 아니었을까. 예능 PD들은 그 특유의 재치와 예능감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물론, 자칫 무겁고 교훈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메시지도 그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도록 담아내는 역할도 해냈었다. 느낌표, 러브하우스 등의 소위 교훈적 예능 프로그램은 MBC의 일밤의 최고의 핫 코너들이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부분은 사실 잘 보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MBC의 침몰의 징조는 더 많은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인사의 체계는 무너지고, 중장기 인력계획과는 상관없이 임의로 즉흥적 채용이 수개월간 지속되었다. 그 결과 기본적인 자질이 부족한 인력들이 MBC의 기자, PD, 아나운서, 경영이라는 타이틀로 일하게 되었다. 조직의 기강은 흔들리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행위들이 만연하다. 각종 해외지사는 그 전문성이나 필요성조차 따지지 않고 설립되었고, 수많은 외주계약과 행사개최로 수십억원의 돈이 뭉탱이로 빠져나갔다. 무능한 사람이 보직을 차지하게 되니 안에서는 소통이 막히고, 밖에서는 무시를 당한다. 기자, PD, 사업, 광고 등 외부사업자들과 만나는 모든 자리는 MBC를 대표하는 자리인데, 수준미달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일도 안될 뿐더러 회사의 이미지도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MBC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너진 것이다. 정직, 신뢰, 공정, 책임 등의 단어들이 사라져 버렸다. 적어도, 현재 조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보직부장, 국장, 그리고 이사들에게선 말이다. 물론, 조합원들이라고 전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일부는 ‘대의’를 져버리고 ‘대세’를 따랐다. ‘내일’을 버리고 ‘오늘’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무너져 버린 가치로 인해 MBC는 더 이상 이전의 MBC가 아니다. 나를 가슴 뛰게 했던, 그래서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 MBC는 이제 없다. 물론, 사람들은 있다. 그러나 그들이 MBC라고 할 수는 없다. 엄연히 그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MBC의 구성원들이다. 게다가 현재의 MBC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의도 MBC 사옥 앞에 있던, 그러나 더이상 볼 수 없는 붉은색 네모. 

지금은 녹색 네모로 변경된 상태이다. 레드 콤플렉스라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

이 역시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MBC를 둘러싼 생존의 환경이 점차 험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다. 자칫,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고 아꼈던 MBC가 현재 처한 환경 때문에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나로하여금 이런 무모한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이러다 나도 용인으로 발령 받는 건 아닐까...) 왜냐하면, 나보다 너무나 뛰어난 선배들,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은 그들인데,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틈틈히 앞으로 이 블로그에 글을 쓸 것이다. 우리의 환경에 대해, 우리의 내부에 대해, 그리고 처방에 대해, 일종의 기업 주치의가 된 입장으로 (자격증은 없지만^^;;)... 진단과 처방을 중심으로...


부족한 이야기일 수록 감추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 학생 시절, 틀린 문제에 유난히 커다란 표시를 하곤 했다. 그것도 빨간펜으로. 그래야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부족함은 감출 대상이 아니라 드러낼 대상이다. 깨져야 큰다. 부딪혀야 열린다. 드러나야 검증된다.


부디 다소 딱딱하더라도, 읽어주고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 모든 잘못된 부분은 나의 몫이다. 그러나 이 글을 함께 읽고서 함께 뛰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의 몫이다. 


그럼, 다시, 가슴 뛰는 MBC를 위해. 이 부족한 글들이 그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 2013.4.18. jwvi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