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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마케팅/MBC

'열정'을 '복종과 성실'과 맞바꾼 경영진

by jwvirus 2013. 4. 16.

MBC는 일명 '주인 없는 회사'다. 그러나 통상적인 생각과는 달리 MBC 직원들은 참 열심히 일해 왔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을 새고, 회사 동료들끼리는 매번 만나면 회사 걱정만 나누다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혹자는 MBC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사장인 줄 안다고 한다. 다들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고 다들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게 싫었나보다. 불편했나 보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런 직원들의 자율적인 태도를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비판하더니, 급기야는 주인 아닌 주인들이 진짜 주인처럼 행새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갑자기 그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워낙 자유롭게 살아오던 사람들인지라 MBC는 혼란에 빠졌다. 긴 저항이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일부 진짜 주인들이 별 저항 없이 주인 아닌 주인들에게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기 시작했다. 이는 더 큰 혼란으로 이어졌다. 

'아니, 도대체 저들은 왜?'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성실하고, 체제비판적인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게중에는 쫓겨나고 버림받은 사람들도 생겼다. 


최근 읽고 있는 경영학 책에서 왜 이런 일이 문제였는지를,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잣대가 아닌 순수한(?) 경영학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비정치적인 영역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글은 대게 조선일보 WeeklyBiz에 실릴만한 이야기니깐. 최소한 저분들이 보시기엔 순수한 것 아닐까?)


세계적인 경영학의 구루(Guru)인 게리 하멜 교수의 신간,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What Matters Now)"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매슬로우의 인간의 욕구단계이론에서 착안한 '직장 내 인간 역량 단계'라는 표다.

http://thehypertextual.com/2010/04/08/gary-hamels-pyramid-of-human-capabilities/


[직장 내 인간 역량 계층 이론 - Gary Hamel]


이 표는 이런 의미다. 당신이 속한 조직을 떠올리면서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복종(obedience)의 욕구는 직원들이 매일 출근해서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따르는 단계로 가장 맨 아래의 단계에 해당한다. 다음은 성실(diligence)의 욕구다. 열심히 일하고 끝까지 맡은 일을 다 해내라는 뜻이다. 게으름뱅이들과 함께 조직의 성공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다음 단계는 지적 능력(intellect) 또는 개인 역량의 욕구다. 어느 기업이나 잘 훈련되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애쓰는, 즉 일류급 역량이 있는 직원을 원한다. 


문제는 복종, 성실, 역량이 글로벌 상품하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인적 역량은 세상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눈치챈 기업들은 잘 훈련받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나라에 수많은 작업을 아웃소싱해왔다. 그럼에도 저가 임금 체계는 장기 경쟁 우위를 달성하는 데 좋은 전략이 되지 못한다. 직원들에게 오직 복종, 근면, 지식만 끌어내서는 결국 경쟁 업체들에 뒤지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역량의 피라미드를 높이 쌓아야 한다. 먼저 전문성을 넘어 진취성(initiative)을 키워야 한다. 진취성의 욕구는 직원들이 문제나 기회를 접할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또 직무 기술서에 얽매이지 않고 즉시 행동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욕구다. 그 위 단계는 창조성(creativity)의 욕구다. 통념에 맞서고, 다른 업계를 주시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물색한다. 마지막 맨 꼭대기는 열정(passion & zeal)의 욕구다. 이 단계에서 직원들은 그들의 업무를 사명,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열정 속에 일하는 직원들에게 업무는 즐거움 그 자체다. 이런 직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업무에 바친다. 이들은 다른 직원들이 단지 출근하는 데 의미를 둘 때 업무에 열심히 참여한다.(책의 239쪽~240쪽 인용)



그러니깐 지금 전세계적으로 직원들에게 단순한 복종, 성실, 전문성 정도를 요구해서는 경쟁에서 밀리니깐 더 중요한 진취성, 창의성, 그리고 열정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뭐, 요약하면 이런 얘기일 테다.


그러면 분명한 사실은 MBC의 리더십은 피라미드의 6단계에서 1단계로 조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역주행이다. 결국, 최상급의 역량인 '열정'을 쏟아 '창의적이고 진취적'으로 일하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더 저급한 역량인 '복종'과 '성실'을 요구하는 꼴인데, 우리사회에서 중요시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한참 미달하는 컨셉이다.


그 결과 MBC는 창사 이래 최악의 시청률과 광고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시청률은 다소 살아나고 있는게 그나마 다행.)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전략적 시점임이 분명한데도, 조직의 역량을 한데로 모으고 최고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커녕, 그런 시도조차 부재한 상황이다.


창사 이래 최고의 위기는 게리 하멜 교수의 주장처럼 복종, 성실, 전문성이라는 역량만으로는 역시나 오늘날의 경쟁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방송사만큼 사람이 중요한 곳이 또 있을까. 그리고 본업이 창조인데 복종이라니. 열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의 열정을 식혀주는 쿨한 리더십은 정말 위험하다. 창의성과 진취성에는 아무런 Respect가 없는 경영진은 한참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참사는 인사에서 시작는 법인데...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애초에 경영에 대한 개념 대신, 행정이나 관리 같은 단어만 머릿속에 존재하는 분들이니깐. 쉽게 말해 능력이 안되는 거다. (결코 나쁜 뜻을 갖고 그러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복종, 성실, 전문성. 얼마나 관리하기 쉬운 능력치인가. 게다가 불안한 신분이라는 약점만 잡고 있어도 직원들의 이런 능력치들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반면,  창의성, 진취성, 열정 같은 건 잘 관리할 수 없다. 애초의 관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관리'의 마인드만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자신들의 역량을 넘어가는 역량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